어린나귀 그리고 함성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는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며 꽃망울들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4월의 변덕스런 봄바람도 힘찬 생명운동 앞에서는 힘을 못 쓰고 양보를 합니다.
겨울의 고통을 견딘 첫 작품으로 만발한 진달래꽃이 생명체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길가의 개나리와 정원과 공원을 지키는 가련한 목련이 활짝 핀 꽃으로 화답을 합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꽃 소식들이 힘들고 지친 모든 이들에게 웃음과 소망을 줍니다.
이러한 생명운동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에 깨어있는 의식과, 미래를 위하여 무언가를
준비하던 이들은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고요한 새벽을 깨우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21일간 어두운 새벽에 끈질긴 살아있는 믿음으로 기도의 향연을 피우던 이들과
무겁게 짖 누르던 겨울 같은 고통과 싸우던 모든 이들에게도 환한 웃음과 진한
감동과 생명의 향기가 반가운 꽃 소식처럼 다양한 응답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금주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가슴 아픈 한 주간입니다.
생명의 소식이 가득한 계절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은
예수그리스도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심과, 배신, 고난과 십자가를
회상하며, 금식, 고행, 회개, 기도, 예배를 통하여 고난, 죽음 뒤에 찾아오는
죽음을 정복한 부활의 위대한 역사를 증거하고 체험하며 부활을 기다리고
하루의 시작을 기도와 말씀묵상을 하며 보내는 주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다시 한 번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삶을
뒤 돌아보며 나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환호하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막11:9) 하며 환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당장은 당신께 환호하는 무리들이 곧 당신을 못 박으라고
마음이 바뀌어 돌변할 자들임을 아시면서도 당당하게 들어가셨습니다.
며칠 후 당신은 십자가 처형하라고 배신하고 등을 돌릴 사람들임을 아시면서도
오직 그들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어서 구원을 주시려는 뜨거운 사랑으로 백성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주님의 심정을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2천여 년 전에 나를 위하여 주가 당하신 환영, 배신,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새로이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이 환영 받을 때 어느 자리에 있었으며, 주님이 외로이 기도하실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를, 배신하는 제자가 등장할 때 나의 처신과 나의 소속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의리도, 미래도, 생각도 없이 군중심리에 끌려서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과 외침 속에 나는 없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제자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죽이라는 함성 속에서도 온 인류의 구세주요 메시야이신
주님의 모습 속에서도 고난 주간을 보내는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생각과 의식적으로
소중한 시간을 정하여 금식(음식을 포함한 TV,오락, 세상소식, 세상적인 무가치한
대화, 비방, 시기, 질투, 미움, 원수 맺기 등도 절재하며 금하는 금식)하며, 묵상과
경건의 침묵시간을 가지며 겸손, 온유, 절재, 사랑에 대해서 묵상하십시오.
한 주간만이라도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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